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존재합니다. 대체 거짓말이 무엇이냐?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 또는 그런 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 즉, 타인에게 사실과 다르게 뜻을 전하는 걸 전부 거짓말이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거짓에 대한 개념을 더 포괄적으로 정리하자면, 남을 속여 넘기는 기만欺瞞 또한 거짓말이겠지요.
삼체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건 드라마나 소설이나 똑같은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못하기에 지구인들이 무섭다고 언급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당시만 해도 드라마에 몰입했고, 외계인이니까 지구인과 다를 수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설정을 파고들수록 삼체인들이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설정이었습니다.
삼체 드라마 속 거짓말
예원제가 외계 문명의 메세지를 받는 장면입니다. 당시에는 “삼체” 종족 특성이 나오지 않았지만, 자칭 평화주의자 삼체인은 이 메세지를 받은 건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선 문제가 되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너희에게 경고한다. 회신하지마라. 회신하면 우리가 갈 것이다.
당시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삼체 행성은 멸망 직전이었고 생존의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 통신 수준으로 지구가 삼체보다 지극히 수준이 낮다는 걸 간파한 평화주의자 삼체인은 “지구인”에게 자신이 메세지를 받은 걸 행운이라 알라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오류가 시작됩니다. 삼체인들은 텔레파시와 같은 의사소통 방식을 통해 생각을 숨기거나 할 수가 없기에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왜 이 삼체인은 예원제에게 회신하지 말라고 했던 걸까요? 내가 먼저 받았으니 행운? 생각을 숨길 수 없어서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인데 회신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는” 행위는 거짓말이 아닌 걸까요? 거짓의 개념을 모르면서 기만을 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이 부분에서 이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여러 가정을 통해 해당 감청원이 다른 동족들과 거리, 공간, 시간의 제약 등으로 생각을 전해지 못했기에 숨길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삼체인들이 텔레파시를 통해 생각을 모두 읽혀서 거짓의 개념을 알지 못한다는 건 애초부터 설정 오류입니다. 삼체인들끼리 생각을 숨길 방법이 있다는 거였지요. 그렇다면 삼체인들이 지구인들에게 거짓을 배웠다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소통을 하기 전에는 전달이 안 됐다고 한다면?
작중 에반스가 질문합니다. 주님은 의도를 숨기는 일이 없었냐고요.
아는 것은 소통이 일어나는 순간 곧바로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예원제와의 소통에서 거짓말은 소통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했던 말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오류가 또 생겨납니다. 소통이 불가했기에 예원제에게 침공하지 않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회신”하게 되면 침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회신을 안 했다면? 삼체 감청원은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던 걸까요? 소통하지 않으려 했던 걸까요?
삼체인이 소통을 하려 하지 않았든, 곧 죽을 위기에 쳐해있었던 간에 회신하면 침공한다는 말은 결국 누군가를 속일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삼체인이 속이려고 했던 것은 삼체 행성의 지옥 같은 환경에서 항세기 난세기를 거치며 겨우 생존하고 있던 종족들이었습니다. 지구 문명을 불쌍히 여겨 다른 동족들에게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았던 건,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삼체인들은 예원제와 통신할 때부터, 기만과 거짓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발전한 종족이 자신들이 하는 행위에 단어나 개념조차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자의 거짓말
단순히 예원제와의 소통에서 기만술, 거짓말을 했던 건 아닙니다. 왕 먀오(오거스티나 살라자르)가 나노 섬유를 개발할 때, 환상을 보여주며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뭔가 일이 벌어질 것처럼” 환상을 보여줬습니다. 사실상 지자는 물리력이 없는 양자 컴퓨터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데 환상을 보여줬다는 건, 결국 거짓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즉,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넌 죽을 수도 있다. 혹은,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라고 협박을 하는 셈인데 사실은 지자가 행할 수 있는 물리력엔 한계가 존재합니다. 만약 한계가 존재하지 않고 개발하는 모든 인원들을 죽일 수 있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더욱 큰 문제가 됩니다. 애초에 지구인들은 지자 하나 때문에 멸망으로 달려갈 것이고, 결국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불거진 “지자 만능설”에 힘을 주는 설정이 되어 버린 것이죠.
지자가 카운트다운으로 거짓 협박을 했다 = 기만술과 거짓
지자가 카운트다운으로 진짜 협박을 했다 = 지자 만능
즉, 둘 중 하나의 개념에서 소설에서는 지자가 저리 강하게 나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드라마에선 초반에만 강하게 묘사되고 후반으로 갈수록 인간 발전을 거의 막지도 않았지요. 즉, 지자는 만능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자의 카운트다운은 결국 기만술의 일종으로 ‘거짓’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삼체인들이 거짓을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개념이죠.
그래도 변명을 해본다면?
삼체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종족은 아닙니다. 소설에서도 삼체인들은 기만술도 하고 거짓말도 합니다. “인간에게 배워서” 더 기만을 잘 하게 된다는 설정이 가미되는 겁니다.
삼체 감청원이 예원제의 감청을 듣는 순간 죽을 운명이었고, 지구에서 삼체까지 회신이 오래 걸리기에 다음 감청원이 오기 전에 죽을 운명이었다면 뜻을 전해주지 않았어도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체인은 지구인들의 평화를 위해 죽음으로서 기만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문제점은 그런 부분에서부터 다른 이들에게 뜻을 숨길 수 있었고, 특정한 삼체인들이 자신의 뜻을 숨기고 개인적인 행동을 일삼았다면 종족의 생존을 염원하는 삼체 종족이 그 개인의 일탈을 가만히 놔두었을까요?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면, 삼체인들은 멸망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최대한 변명을 해두자면 예원제의 감청을 받은 삼체인은 “단 하나밖에 없었던” 돌연변이라고 설정을 추가한다면, 어느 정도는 설득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지자의 카운트다운 기만술도 지구인들에게 배워서 지자가 삼체인들의 명령이 아닌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카운트다운을 실행했다고 한다면 가능하리라 봅니다. 에반스와 대화를 통해 거짓말의 개념을 배워버린 삼체인은 그들 종족 중에서도 이해력이 매우 딸리는 삼체인으로 설정한다면 모든 거짓말 오류가 설명이 됩니다….
만, 이렇게 되면 류츠신 작가의 소설 자체가 망가집니다.
거짓말에 대한 설정 오류는 재미로 생각해본 부분입니다. 사실 삼체를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흥미로운 상상들이 많았지요. 소설에서 극한의 핍진성을 요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